“기억해야 할 215개의 작은 무덤”
교황의 명령 아래 펼쳐진 식민주의: 가톨릭이 저지른 인권 유린의 역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미명 아래, 수 세기 동안 가톨릭교회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정복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이 거대한 식민 프로젝트는 단순한 영토 확장만이 아닌,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문화 말살과 인권 침해의 여정이었습니다.
1. 교황의 식민지 정복 승인과 ‘발견의 원칙’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후, 교황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팽창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습니다.
- 교황 니콜라오 5세는 Dum Diversas(1452)와 Romanus Pontifex(1455)를 통해 이교도들의 영토 정복과 노예화를 공식 승인했습니다.
- 이어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Inter Caetera(1493)를 통해 신대륙을 유럽 열강이 나눠 갖는 것을 허락하며, 종교적 권위를 식민지 확장에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칙서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이라는 개념으로 제도화되었고, 이는 국제법적 관행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이 원칙에 따라 “발견한 비기독교 땅은 기독교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유럽 세력은 정복과 약탈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습니다.
2. 원주민 학살과 문화 말살
가톨릭 성직자들은 무장 정복자들과 함께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진출했습니다. 그 결과:
- 수천만 명의 원주민이 전쟁, 질병, 강제 노동으로 희생되었고,
- 개종을 거부하는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 처벌당했으며,
- 토착 신앙과 언어는 “이단”으로 규정되어 말살되었습니다.
가톨릭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일부 수도회는 노예 노동을 직접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정복과 선교는 분리되지 않았고, 성직자들은 종종 그 잔혹한 탄압의 ‘도덕적 얼굴’을 제공했습니다.
3. 기숙학교 학대: 인권 침해의 현대적 형태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도 교회의 억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북미 지역에서 원주민 아동을 대상으로 한 ‘기숙학교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 캐나다와 미국 정부는 원주민을 동화시키기 위해 아동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켰고,
- 가톨릭 교회는 다수의 기숙학교를 운영하며 문화 말살과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이들은 원주민 언어와 전통을 금지하고, 강제노동, 체벌, 성폭력, 영양실조 속에 아이들을 방치했습니다.
2021년, 캐나다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명의 어린이 유해가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되자, 교황 프란치스코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이라며 사과했지만, 실질적 보상이나 책임 이행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티칸 공식 뉴스는 이 사건을 ‘눈물’과 ‘선물’의 감성적 포장으로 다루며, 피해자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습니다.
(출처: Vatican News 기사)
4. 오늘날의 반성과 저항
과거 가톨릭의 식민 개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노의 대상입니다.
- 캐나다 원주민 단체들은 15세기 교황 칙서의 공식 폐기와 실질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 과거 성자화된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기념물 철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교회 내부에서도 반성의 흐름이 일부 감지되기는 합니다.
예컨대 2019년 아마존 시노드에서는 선교가 남긴 상처를 언급하며, 보다 포용적인 접근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수백 년간 이어진 폭력과 억압을 치유하기엔 아직 너무 미미합니다. 교회의 도덕적 권위는 지금, 가장 깊은 시험대 위에 올라 있습니다.
🔚 마치며: 진실은 잊히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전한 것은 종종 폭력, 억압, 강제 개종, 그리고 문화적 제노사이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진실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역사적 책임과 정의를 요구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진실은 감춰진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이제야말로 진정한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